2014년 4월 10일 목요일

2014 4/11 시평/잠깐! 먹이를 주지 마세요

[머니투데이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 잠깐! 먹이를 주지 마세요

 동남아 휴양지의 바닷가 모래사장, 네 살 남짓한 두 꼬마가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거의 한 시간째 각각의 모래성을 쌓고 있다. 두 아이의 부모들은 비치파라솔 아래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책을 읽고 있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꿈쩍도 않는다. 자신이 만든 모래성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그깟 비 따위가 무슨 대수랴.

 하지만 두 어머니의 서로 다른 반응은 참으로 흥미롭다. 아이의 이름을 고래고래 부르는 어머니. 아! 한국말이다. 감기 걸리니 그만 올라오라고 소리친다. 싫다는 아이에게 몇 번 더 윽박지르더니 아빠를 시켜서 들쳐 업고 오게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남겨진 모래성이 외롭다.

 내 바로 옆 파라솔에 있던 서양아이의 어머니는 내리는 비의 양을 손바닥으로 가늠하며 지켜보다가 빗줄기가 거세지자 아이에게 걸어간다. 그리고는 뭐라고 대화를 나누더니 아이 곁에서 앉아서 함께 모래성을 쌓는다. 모래성을 계속 쌓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아이가 결정하게 한 것이리라.

 삶에서 운이라는 요소를 고려치 않는다면, 이 두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굳이 선험적 지식이나 특별한 예지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꿈과 의지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굳이 둘 중 하나만 갖는다면 무엇이어야 할까 하는 오지랖 넓은 궁금증이 있었더랬다. 꿈이 없는 의지는 맹목적이고, 의지 없는 꿈은 허망할 것이니 말이다. 그 답을 지난해 키나발루 등반에서 찾았다.

 입산 3일째 되던 날, 새벽 2시부터 산을 오른다. 그래야 해발 4100미터 동남아 최고봉에서의 해돋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달빛과 랜턴에 의지하여 끊임없이 오르막뿐인 산을 네 시간 엄게 올라가니 정상이다. 정상에 올라보니 우리가 올라온 산이 원뿔모양이었음을 알게 된다. 끝도 없이 내려가는 하산길. "정말 우리가 이토록 가파른 길을 올라 온 거야?"라며 모두 놀라워한다. "만약 우리가 정상까지의 길을 훤할 때 봤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래. 올리버 크롬웰이 말했지.
"사람은 자신이 오르고 있는 곳을 모를 때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다."고. 결국, 꿈보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굳센 의지가 자신의 꿈과 한계를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 꿈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어서 저절로 의지를 동반한다면 어떨까. 키나발루 정상까지의 가파른 길을 우리가 보았다 할지라도 정상을 향한 가슴 뛰는 꿈이 어떠한 고행도 견뎌낼 굳센 의지를 동반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꿈과 의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의지이다. 하지만 그 꿈이 가슴 뛰는 것이어서 의지를 동반케 하는 것이라면 꿈의 힘이 더 세다. 모래성을 만들던 아이에겐 빗줄기를 이겨낼 만한 의지가 샘솟는 것이며,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시련도 이겨낸다고 했으니 말이다.
 결국 아이의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아이 스스로 가슴 뛰는 꿈을 꾸게 만들고 이를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부모의 결정에 의존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게 다 우리 자식 잘되라고 하는 거란다. 나는 선생님들의 '사랑의 매'라는 것과, "너 잘되라고 그러지 우리 잘 되라고 그러니?"라는 부모의 말은 진실에서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이다. 한번 따져보자. 그게 아이의 욕심인다, 아니면 부모의 욕심인다. 주위의 칭찬이 자자한 범생이의 노력은 스스로의 삶을 위한 것이가 아니면 부모의 욕망을 부응하기 위함인가. 후자라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의 진로를 결정해주고 의지마저 대신 채워주는 열성 부모덕에 아이가 훌륭하게 자랄 것이라고 하는 건, 살대만 남은 찢어진 우산으로도 소나기에 젖지 않을 거라 우기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체제는 추세에 순응하며 경쟁에서 이기라고 말한다. 그러면 더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경쟁은 효율성을 전제로 하기에 경험과 전략에 출중한 부모가 나서야 한다. 여기에 아이들의 시행착오와 경험은 설 자리가 없다. 경험이 인생의 거의 전부인데도 말이다.

 세상은 "너의 삶을 제대로 누리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물을 뿐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솔직해지자, 우리들에게 가슴 뛰는 일이 있었던가? 힐링 열풍은 어른들 대부분의 삶이 그러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만큼은 가슴 뛰는 꿈을 스스로 찾도록 조금 더 기다려 주자. 그리하여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과감하게 도전하며 굳센 의지로 자신의 삶을 채우도록 하자. 그것만이 아이들의 진정한 성공을 담보하는 길이요, 청소년 자살률이 OECD국가 가운데 2위라는 오명을 벗는 일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휴양지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 탄천을 산책하다 잉얻들이 특히 많이 모여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걸려있는 공고판에 눈길이 머문다. "잠깐! 먹이를 주지 마세요. 면역력, 생존능력이 떨어집니다." 그게 비단 물고기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
어린이는 꿈을꾸고
어른이는 꿈을끄고


 '체제는 추세에 순응하며 경쟁에서 이기라고 말한다. 그러면 더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참 슬픈 말이며, 말도 안되는 말이다.
 남들이 가는 추세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며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더구나 그게 필수불가결한것도 아니며 단지 더 누리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다.

 스스로 가슴 뛰는 뜨거운 꿈을 꾸고 그 꿈이 굳센 의지를 동반하는 삶을 살것이다. 어떤 사람이 될것인지보다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지를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추세에 순응하며 얻는 안정은 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지언정 만족시킬 수는 없다.

 추세에 순응하며 경쟁에서 이겨왔다 한들 그 승리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고 실패는 실패 자체로만으로 너무 힘겹기만 했다.

 뜨거운 꿈을 꾸고 그 꿈이 굳센 의지를 동반하는 삶속에서 자신이 오르고 있는 곳이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하여도, 그런 인생을 산다면 승리도 패배도 나의 인생으로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