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518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 광주에서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날에 거대한 국가로부터 힘 없이 짓밟힌 개인과, 그 개인들이 살아온 그날 이후의 삶에 대해 차분히 서술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수업시간에 혹은 영화에서 잠깐씩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한 것이 전부였을 때까지는 1980년 5월 19일과 그 이후를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518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주 들어 익숙해진 이름의 역사속 수 많은 사건들을 전혀 모르고 있구나 생각했다.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9. 겨울방학 (2015년 12월)


- 9. 겨울방학 (2015년 12월)

 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됐다. 본격적으로 씀에 집중해 볼 계획으로 기숙사에 남았다. 학기가 마무리되기 전에 기필코 앱을 완성시키고자 했던 것도 이런 계획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틈틈이 앱을 완성시키고 방학기간 동안 몰아붙여서 승부를 보자는 심산이었고, 꽤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할 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패턴이다. 학기가 진행되는 약 3개월은 프로젝트를 1차적으로 완성하기에 적당한 시간이고, 방학은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학생들만의 특권 같은 시간이다. 물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 더 긴 호흡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정해둔 완성 혹은 출시까지의 기간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것이 본인들의 역량에 맞는 일인지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한 프로젝트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해보고 결정하면 된다. 거창하게 회사를 만들거나 사무실을 얻거나 할 필요도 없다. 마음 맞는 친구 몇 명과 말 그대로의 프로젝트를 정해진 기간 동안 해보면 된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학교나 정부에서 ‘창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학생들을 부추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추기는 주체와 부추김을 당하는 대상 모두가 ‘창업’이라는 단어로 인해 본질에서 멀어지기가 너무도 쉽다는 것을 몇 년간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불꽃이 튀었고, 이것을 함께 할 친구 혹은 선후배가 있다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기간이 정해진 프로젝트를 통해 승부를 보자. 그것 외에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언어들이 있다면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리는 것이 좋다. 

 방학이 되면서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으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정했다. 걱정 어린 반대에 무릅쓰고 원하는 일을 하겠다면서 그것을 위한 생활비를 부모님께 받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2월 당시 통장에 약 50만 원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윤재형도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과외를 그만두었던 시기여서 돈이 없었다.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 서버 운영비용, 프라이머 관련 일로 함께 서울에 오가는 비용 등 다양한 지출로 잔고는 3주 만에 바닥났다. 다행히 일주일 후에 윤재형이 그전에 해둔 디자인 외주 비용이 입금되면서 그나마 버텨나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일주일 동안은 1+1 라면을 주식으로 현실 만 원의 행복을 찍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량한 얘기들이 많지만 그때는 마냥 즐거웠다. 하루는 컵라면만 먹기엔 허전해서 약간의 사치를 부려 양파링을 같이 샀다. 뜬금없이 양파링을 컵라면 국물에 찍어 먹어보고는 뜻밖에 맛있음에 감탄하며 신나했었는데, 지나고 나서는 이제 그럴 일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다. 

 씀 앱을 개선하고 추가 업데이트를 준비함과 동시에 씀에서 작성된 글을 모아 책으로 제작해서 전국에 독립 책방을 통해 판매했다. 내가 만든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숫자가 계속 늘어간다는 것과 출시 전부터 꿈꿔오던 '씀의 글로 책을 제작하는 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설레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용자 규모가 조금씩 늘어갈수록 감사하고 설레는 기대감과 함께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도 동시에 커져갔다. 10명에서 100명, 100명에서 1,000명, 1,000명에서 10,000명 … 규모가 한 단계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문제들과 마주했다. 땜질하듯 겨우겨우 상황을 모면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적절한 해결 방법을 알지 못해 시간이 지체될 때마다 무거운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나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출시 초기에 우린 이대로 끝이구나 했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 필요한 키 파일을 잃어버렸을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약 2만 명 정도 사용자들의 글을 모두 지워졌을 때였다. 그 키 파일을 잃어버렸다면 더 이상의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없어서 몇 만 명이 다운로드했던 앱을 지우고 새롭게 올려야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사용자 수, 순위, 리뷰 등의 기록들이 다 사라지게 된다. 다행히 다시 찾긴 했지만 정말 아찔했던 기억이다. 이것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한순간에 사용자들의 글이 모두 사라졌을 때였다. 여느날처럼 새로운 기능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던 새벽이었다. 윤재형이 잘 못 입력된 글 데이터 한 줄을 지운다는 것을 실수로 테이블을(관계형 데이터베이스와 플랫 파일 데이터베이스에서 테이블(table)은 세로줄과 가로줄의 모델을 이용하여 정렬된 데이터 집합(값)의 모임이다.) 통째로 지워버렸다. 그땐 그런 실수를 방지할 만한 기초적인 장치들도 되어 있지 않았다. 망연자실했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몇 분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정말로 이대로 끝이구나 싶었다. ‘그래, 지금까지의 행운이 말도 안 되긴 했지. 아쉽긴 하지만 우린 여기까지구나.’ 이런 자포자기한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당시에 이용중이던 호스팅 업체(서버를 대여하는 서비를 하고 비용을 받는 업체) 긴급 장애 대처 서비스에 전화했다. 다행히 매일매일 자동으로 서버에 데이터를 백업해두고 있었다. 약 4시간 정도의 데이터를 제외한 나머지를 복구할 수 있었다. 소중한 글을 잃어버린 사용자분들 한 분 한 분께 사과드린 후 상황을 수습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몸으로 부딪히며 지금까지 왔다. 그때 우리가 그렇게 망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순간들을 여러 번 거치면서 조금씩 멘탈도 단단해지고 여유도 생겼다. 미래의 있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며 지금 우리가 혹은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항상 걱정이었는데, 자연스레 그런 걱정은 의미가 없고 순간 순간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전 크게 공감했던 소설가 김연수님이 젊은 소설가들을 향해 쓴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젊은 소설가여, 매일 그걸 해라."



- To be continued...

2017년 10월 5일 목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8. 5분의 대화 (2015년 12월)


- 8. 5분의 대화 (2016년 12월)

 그렇게 정신없이 12월의 중반을 넘긴 후, 피할 수 없는 기말고사 기간이 됐다. 하루 이틀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겨우겨우 시험을 치렀다. 저녁에 있을 마지막 과목 시험을 세 시간 정도 앞둔 긴박한(?) 오후였다.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포스터를 통해 그날 있을 학교 창업 관련 행사에 벤처기업 투자자 배기홍 대표님(스트롱 벤쳐스)이 방문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이대로 쭉 시험공부를 해야 할지, 아니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행사에 참가해서 투자자를 만나봐야 할지를 약 10초 정도 고민해봤다. 설치 수가 1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고,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더 진행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막막하던 때였다. 당장 투자를 받고말고의 문제보다 순수하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여쭤보고 싶었다. 또 가지 않고 남아 있는다고 해서 시험 공부가 잘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윤재형과 간단히 우리의 상황을 ppt로 정리해서 자료를 만들어서 행사장으로 갔다. 일말의 죄책감이 남아 있어 시험공부를 위한 자료들을 함께 가져갔지만 잘 될리가 없었다.

 그렇게 호시탐탐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행사가 각 팀들의 발표와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순서가 다 끝나고 나서 말을 붙일 수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나가려는 분을 붙잡고 대략 이런 식으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유니스트의 학부생 이지형, 이윤재라고 하는데요. 저희랑 잠깐 얘기하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뒤에 일정이 있어서요. 지금은 조금 힘들 거 같은데. 무슨 일이시죠?”
행사 관련된 교수님 몇 분이 기다리고 계신 듯했다. 서로 난처해하며 3초간 정적이 흐른 뒤,
“저희가 앱을 하나 만들어서 출시했는데요. 한 달 만에 사용자가 만 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걸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조언을 얻고자 행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음 그럼 시간이 많이는 없으니까요. 빨리 얘기해보죠.”
준비해 간 4페이지짜리 소개 문서를 보며 빠르게 설명해드렸다.
설명을 다 듣고 배기홍 대표님은 두 가지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둘이서 만든 거라고 하셨죠, 두 분 각자 역할이 뭐예요?"
“저는 개발을 맡았습니다.”, “저는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그럼 이거 그냥 학교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는 거예요 아니면 진지하게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예요?”
“사이드 프로젝트의 단계는 지나갔다고 생각하고요. 진지하게 더 해보고 싶습니다.”
“오케이, 그럼 다음 주에 스카이프 한 번 해요. 메일로 연락드릴게요.”

 간결했지만 강렬했다. 내 생의 첫 번째 벤처 투자자와의 대화였다. 그리고 그분이 배기홍 대표님이었다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로서 계속 만나 뵙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진심으로 창업자를 대하는 것이 대화 때마다 느껴진다. 누군가 생에 처음으로 대화해야 할 벤처 투자자를 찾고 있고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첫 번째가 아니어도 좋다.) 그다음 주 약속했던 스카이프 미팅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한 상황을 설명드리고 대화를 나눴다. ‘프라이머’(http://primer.kr/)라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깃수 별로 초기 기업들을 발굴해서 투자하고 성장을 돕는 회사)를 소개해주셨고, 그 당시 모집 중이던 batch 9기에 지원했다. 순간순간 스스로 결정하기는 했지만, 긴박한 외부 상황 변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고 있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7. 출시 후 일주일 (2016년 12월)


- 7. 출시 후 일주일 (2016년 12월)


 씀 안드로이드 앱을 마켓에 올리고 나서 첫 일주일은 2년여가 지난 지금에도 시간 단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복기해 볼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재미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 몇 가지를 추려 시간 순서대로 쫓아가 보자.

 씀을 마켓에 올리고 난 다음날 주변 지인들 약 20명에게 출시를 알렸다. 그렇게 첫날 신규 가입자 수 2명 (나와 윤재형), 둘째 날 신규 가입자 수 15명(지인 20명 중)으로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셋째 날부터 새롭게 가입하는 사람들과 작성되는 글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3일 차에 회원 수가 100명이 조금 넘었고, 4일 차에 400명, 일주일이 되었을 땐 2,000명을 넘었다. 주변 지인들 중 몇몇이 자발적으로 트위터와 다음 카페 등에 소개해준 것이 발단이 되어 공유와 리트윗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기말고사 준비는 이미 뒷전이 된지 오래였다.


 갑작스러운 사용량 증가에 전혀 대비가 안 돼 있었을 뿐 아니라 체계적으로 개발되지 못한 것들이 많은 까닭에 크고 작은 오류들이 메일과 카톡, 플레이 스토어 리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었다. 1년 이용료가 10,000원도 채 안되는 착한 가격의 서버에 서비스가 돌아가고 있었다. 서비스 출시 후 일주일간 서버가 뻗고 확장하는 과정을 세 번 이상 반복했다. 또 당시 테스트 기기는 직접 사용하고 있던 LG g3 제품 한 대 뿐이었다. 그 한 대로 테스트를 한 후 앱을 출시했는데, 테스트하지 못했던 삼성 제품군에서 글 저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버그가 발생했다. 삼성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후배를 불러 치킨을 사주며 앉혀둔 뒤, 잠시 스마트폰을 빌려서 버그를 고쳤다.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글감이 변경되도록 한 것은 앱 출시 후 대략 삼 주가 지난 후였다. 그전까지는 아침 일곱 시와 저녁 일곱시에 직접 글감을 변경했다. 때때로 늦잠을 자거나 잊어버리고 글감을 변경하지 못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삼 주간 그렇게 하고 나니 방식을 자동으로 변경한 뒤에도 얼마간은 아침 일곱 시만 되면 깜짝깜짝 놀라서 깨곤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하나 직접 부딪히며 개선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충분히 준비된 상태는 아니긴 했지만, 흥분되고 설레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2017년 10월 3일 화요일

기차에서

 추석을 맞아 기차를 타고 고향인 김천에 가는 중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꼬마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애타가 찾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기차에는 그 무엇인가가 없다고 설명하며 애써 아이를 달래는 중이었다. 무엇을 저리 애타가 찾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중에 문득 나의 어린 시절 중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내가 일곱 살,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때의 어렴풋한 기억이다. 연년생인 형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었고, 유치원을 마치고 나면 엄마가 차를 타고 데리러 오셨다. 형이 한 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부터는 엄마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때의 나도 기차에서 칭얼대고 있는 저 아이처럼 막연하게 무엇인가를 찾곤 했다. 유치원에서 먹은 쿠키가 너무 맛있었던 날이면 그 쿠키를 찾으러 가자고 했고, 가지고 놀았던 유치원의 교구나 장난감이 너무 재미있었던 날이면 그 장난감을 찾으러 가자고 했다.

 그땐 미쳐 알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그 기억들이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들떠서 쫑알대며 무엇인가를 찾을 때마다 엄마는 그 말도 안 되는 설명과 엉터리 묘사를 찬찬히 그리고 진지하게 들어주고, 함께 그 무언가들을 찾으러 다녀주셨다. 쿠키를 찾는 날에는 온 동네 제과점을 다 돌아다녔고, 장난감을 찾는 날에는 동네의 마트와 장난감 가게들을 뒤지러 다녔었다. 그렇게 세네 군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는 제 풀어 지쳤고 그때쯤 엄마는 납득할만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거나 다음에 다시 찾아볼 것을 제안해주셨다.

 분명 그때의 엄마도 나의 설명과 묘사로는 그 무엇인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것을 찾고 못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억누르거나 굴복시키려 하기보다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납득할 수 있도록 과정을 함께 해주었고 그것을 귀찮거나 낭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한 맥락의 기억하는 일들과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차곡차곡 쌓여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6. 출시를 향해 (2015년 10~11월)


- 6. 출시를 향해 (2015년 10~11월)

투썸플레이스에서

 '대부분 시간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라는 대략적인 방향을 정했다. 그 후 약 한 달 정도의 토론과 세부 기획 과정을 거쳐 더 살을 붙이고 다듬어 갔다. 학기가 진행 중이었다. 저녁 6시까지는 수업, 과제, 모임 등의 학교 활동을 주로 했고, 그 후 윤재형과 만나서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경험상 학교를 다니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각 구성원들이 전업(풀타임)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흐지부지되기가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가서 완성하는 것은 지난하고 처절한 과정을 견뎌내는 인내력과 지구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프로젝트 초기에 들떠있는 구성원들의 서로를 격려하는 언어와 결의 만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기필코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해 규칙과 목표를 한 가지씩 정했다. 규칙은 매일매일 함께 쏟을 수 있는 현실적인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는 과제가 있던 친구의 생일이 있던 다 상관없이 프로젝트에만 집중하자는 것이었고, 목표는 12월 1일까지 앱을 완성해서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출시하자는 것이었다. 함께 정한 시간은 매일 저녁 여섯 시부터 대략 자정 전까지의 밤 시간이었다. 몇몇 카페를 전전하다가 어느 날부턴가 학교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만 갔다. 우리는 세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그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매일 같이 카페에 갔다. 결론적으로 씀은 목표 일보다 3일 늦은 12월 4일에 스토어에 출시됐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씀이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규칙을 잘 지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씀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의 세 달은 기획, 제작, 마무리(출시 준비) 작업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9월 한 달은 아무런 코딩을 하지 않은 채 앱 기획에만 집중했다. 경험과 실력이 현업에 있는 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가지고 있는 자원과 한계를 더 확실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철저한 기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만에 얼렁뚱땅 기획을 끝내고 허겁지겁 개발에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실제로 이전에 다수의 프로젝트를 그렇게 망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달간 앱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대화하며 기획을 완성했다. A4용지를 스마트폰 화면만 한 크기로 잘라 모든 화면을 그곳에 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 프로토타입을 카페 책상에 순서에 맞게 책상에 쭉 펼쳐두고 수 없이 추가, 제거, 재배치의 과정을 거쳤다. 그 속에서 ‘씀’이라는 이름도 정했다.

종이 프로토타입

 결코 완벽하진 않았지만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기획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던 10월 초부터 본격적인 제작 작업을 시작했다. 서버와 DB에 대략적인 기초를 잡은 뒤 기획돼있는 화면을 순서대로 만들어 나갔다. 중간중간 막힌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작업이 진행됐다. 11월의 마지막 주가 됐을 때 약 80% 정도가 완성되었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막바지 마무리가 가장 지치고 고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젠 정말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버그나 추가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았다. 목표했던 12월 1일이 되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12월 1일을 출시일로 정한 것에는 세 달 정도의 기간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늠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12월 중순에 있는 학기 기말고사 기간 전에는 마무리를 짓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연달아 기말고사와 겨울 방학을 맞이한다면 이 프로젝트의 수명은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 궁지에 몰린 마음으로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고 쪽잠을 자면서 마무리 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3일이 더 지난 12월 4일에 완성된 앱을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출시할 수 있었다. 그날 오전 열 시쯤에 밤을 새우고 들어간 수업 맨 뒷자리에 앉아서 출시 버튼을 눌렀다. 그때의 기분은 성취감이나 후련함보다는 찝찝함과 자괴감에 더 가까웠다. 겨우겨우 완성해서 쫓기듯 출시는 했지만 부족한 것과 출시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이 많았고, 처음 기대보다 훨씬 못 미치는 앱을 출시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수업을 마치고 윤재형과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며 각자 느낀 기분에 대해 얘기했다. 다음엔 더 잘 해보자며 서로를 격려하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부족했던 잠을 보충한 후에 당분간은 그동안 소홀했던 기말고사 준비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