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1일 금요일

오늘과 같은 하늘의 어느날

 3월의 마지막 날이다. 흐리고 우중충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가끔 떨어진다. 올 듯 말 듯한 비처럼, 봄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다. 날씨는 종종 비슷한 날씨였던 지난 어느 날의 기억을 끄집어내곤 한다.

 길었던 겨울을 지나 봄으로 들어가는 초입, 딱 작년 이맘때에 울산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짐을 실은 용달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그날도 오늘과 같은 흐린 하늘이었고 비가 조금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 해의 겨울은 상상하기도 아득할 만큼 멀리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느새 그 겨울도 왔다 가고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라면을 끓일 냄비도 커튼도 없던 원룸에 우당탕탕 도착했던 날, 막막하기만 했던 이곳도 이제 단골이된 고깃집과 자주 가는 미용실이 있는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여전히 올해의 겨울도 상상하기도 아득할 만큼 멀리에 있다고 느껴진다. 아득하기만 한 올해의 겨울이 다시 왔다 가면 내년의 겨울의 끝에서 오늘의 하늘과 날씨를 다시 만나게 될까. 그리고 그때의 나는 올해 혹은 작년의 그날을 떠올리고 있을까. 

2017년 3월 28일 화요일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다.

 우리는 왜 글을 쓸까.

 영화 '동주' 를 봤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송몽규’ 선생님 역을 맡았던 배우 박정민이 이번 영화에 임했던 마음가짐과 소감을 글로 남긴 것을 읽었다. 재미있게 본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를 글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이 배우 생각도 깊고 글도 재미있게 잘 쓰네’ 싶어서, 혹시나 하고 다른 글들이 있는지 찾아 보았다. 역시나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종이책으로 출판까지 했던 글쟁이였다. 당장 책을 사서 읽어보고 더 깊은 팬이 됐다.

 단순히 새롭게 등장한 배우 중 한 명일 수 있었던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는지, 연기자가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어떤 과정으로 배우가 되었는지를 글을 읽으며 꽤 깊게 알 수 있었다. 앞으로 그 배우를 영화 속에서 만나게 된다면 표정, 말투, 몸짓 하나하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도 토론의 달인 유시민을, 영화감독 박찬욱을, 방송인 허지웅을, 가수 이석원을 글로 만나면서 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비로소 진짜 이 사람들 각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글을 통해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전 보건 복지부 장관 혹은 현 작가 유시민의 생각과 발언들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 방송에서의 허지웅의 말들이, 언니네 이발관(이석원)의 음악들이, 배우 박정민의 연기가 그 사람들의 글을 통해 조금 더 완전하게 다가온다.

2017년 3월 27일 월요일

뭣이 중헌디!

 다녔던 학교에서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했다. (아직 졸업은 못했고 휴학 중이니 다니고 있는 학교라고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정말 피할  없는 상황이 아니면 수업 시간에 자발적으로 질문하거나 발표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이유를 알게 됐다.
 조정래 작가님의 소설 정글만리에는 중국 북경대학교 학생들과 미국 유명 언론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인 유학생인 주인공은 영어 실력이 뛰어나건 부족하건 아랑곳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중국 학생들을 보고, 한국과  다르구나 하며 놀란다. 어떻게 그럴  있냐고 여자친구에게 물어보는데  중국인 여자친구의 답변이  놀랍다. 여긴 중국이지 않냐는 것이다. 중국에서 영어를 조금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흠이냐,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자체가 중요한  아니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뒤통수를 맞은  얼얼했다.  장면을 읽으면서 나만 이런  아니고 한국인들 대부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사람들에게 나의 모자란 영어가 비웃음거리가 수도 있다는 쓸데없는 두려움이 있었고 머릿속으로  번이고 표현을 고쳐보는 중에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아무리 인터내셔널 캠퍼스를 표방하고 있다고 한들 여긴 한국이고 한국인 학생이 90% 이상인데 말이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나와 비슷했던 학생들은 괜히 서로가 서로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가지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여긴 한국이다. 한국에서 영어에 조금 유창하지 않다는 것이 무엇이 흠이냐.
 살다 보면 종종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따로 있는데 이상한 것에 온통 신경을 쓰고 움츠러들어 일을 그르치게 되는 상황. 영화 곡성의 명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뭣이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