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녔던 학교에서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했다. (아직 졸업은 못했고 휴학 중이니 다니고 있는 학교라고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정말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수업 시간에 자발적으로 질문하거나 발표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조정래 작가님의 소설 ‘정글만리’에는 중국 북경대학교 학생들과 미국 유명 언론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인 유학생인 주인공은 영어 실력이 뛰어나건 부족하건 아랑곳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중국 학생들을 보고, 한국과 참 다르구나 하며 놀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여자친구에게 물어보는데 이 중국인 여자친구의 답변이 더 놀랍다. 여긴 중국이지 않냐는 것이다. 중국에서 영어를 조금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흠이냐,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고 한국인들 대부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사람들에게 나의 모자란 영어가 비웃음거리가될 수도 있다는 쓸데없는 두려움이 있었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표현을 고쳐보는 중에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아무리 인터내셔널 캠퍼스를 표방하고 있다고 한들 여긴 한국이고 한국인 학생이 90% 이상인데 말이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나와 비슷했던 학생들은 괜히 서로가 서로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한 가지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여긴 한국이다. 한국에서 영어에 조금 유창하지 않다는 것이 무엇이 흠이냐.
살다 보면 종종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따로 있는데 이상한 것에 온통 신경을 쓰고 움츠러들어 일을 그르치게 되는 상황. 영화 곡성의 명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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