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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9일 토요일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_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_ 무라카미 하루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18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p21
 올해 5월 말,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지내게 되면서부터, 달리는 일이 다시 매일의 생활에 하나의 중심축이 되었다. 꽤 착실하게 달리고 있다. 내가 ‘착실하게 달린다’ 고 하는 말은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서 말한다면, 일주일에 60킬로를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0킬로를 달린다는 것이다. 사실은 일주일에 7일, 매일 10킬로를 달리면 좋겠지만, 비가 오는 날도 있고,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는 날도 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달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리 일주일에 하루쯤은 ‘쉬는 날’을 정해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60킬로, 한 달에 대충 260킬로라는 숫자가, 나에게는 ‘착실하게 달린다’ 고 하는 일단의 기준으로 정할 수 있다. 

-> 8월 30일 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조금씩 페이스가 나아지고 있고, 한 번에 달릴 수 있는 거리와 시간도 늘고 있다. 9월 1일인 어제는 총 7.56 km를 53분 11초에 달렸다.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9월 한 달 정도를 매일 달려보면 나에게 맞는 페이스와 주간 목표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p26
 똑같은 경우를 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소설가라는 직업에—적어도 나의 경우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이기고 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해쓴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 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업을 할 때에도 프로그래밍을 할 때에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결국 모든 일은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p35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 사람들로부터, 일로부터, 스마트폰으로부터, SNS로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부터, 유튜브로부터 등등 다양한 것에서 반강제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시간은 나에게도 상당히 유익하며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p45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67
 달리기 시작하고 한동안은 그다지 긴 거리를 달릴 수는 없었다. 20분이나 기껏해야 30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도 헉헉 하면서 숨이 차버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랫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달리는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도 어쩐지 좀 쑥스러웠다. 어쩌다 이름 뒤에 붙는 소설가라는 직함이 쑥스러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p71
 생각해보면, 그런 관점에서 소설가라는 직업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말일지도 모른다. 타고날 때부터의 재능이 풍부한 소설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혹은 무엇을 해도) 자유자재로 소설을 쓸 수 있다. 샘물이 퐁퐁 솟아나듯이 문장이 자연스레 솟아올라 작품이 완성된다. 노력할 필요 같은 건 없다. 그런 사람이 더러는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러한 타입은 아니다.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에게 샘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괭이를 손에 쥐고 부지런히 암반을 깨고 구멍을 깊게 뚫지 않으면 창작의 수원에 도달할 수 없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일일이 새롭게 깊은 구멍을 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활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해가는 동안, 새로운 수맥을 찾아내고 단단한 암반에 구멍을 뚫어 나가는 일을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효율성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의 수원이 메말라간다고 느껴지면 과감히 바로 다음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의 수원에만 의지하고 있던 사람은 갑자기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어도 그리 쉽게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불공평한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 있는 종류의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공정함’ 에 굳이 희구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어떤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재량이다. 


p75
학교란 그런 곳이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 라는 진리이다.


p75
 그러나 아무리 장거리를 달리는 것이 성격에 맞다고 해도 역시 ‘오늘은 몸이 무겁다. 어쩐지 달리고 싶지 않은데’ 라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니,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여러 가지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서 달리기를 쉬고 싶어진다. 올림픽 마라토너인 세코 도시히코씨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S&B팀의 감독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세코 씨 같은 레벨의 마라토너도 ‘오늘은 어쩐지 달리고 싶지 않구나. 아, 싫다. 오늘은 그만둬야지. 집에서 이대로 잠이나 자고 싶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해보았다. 세코 씨는 말 그대로 눈을 크게 뜨고는,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거야’ 라는 어조로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p122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가오하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p127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운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 투성이의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자가로서, 모순 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은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만약 매일 달리는 것이 그 같은 성취를 조금이라도 보조해주었다고 한다면, 나는 달리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 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p185
 앞에서도 썼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문장을 늘어놓아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아무리 고쳐 써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도 물론 있다. 가령 지금이 그렇다. 그럴 때에는 그저 가설을 몇 가지 제안할 수밖에 없다. 혹은 의문 그 자체를 차례차례 부연해갈 수밖에 없다. 혹은 그 의문이 지닌 구조를 뭔가 다른 것과 구조적으로 맞대어 비교하든지.


p187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나는 기록에 도전하는 무심한 젊은이도 아니고, 한낱 무기적인 기계도 아니다.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오래 자신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해가려 하는, 한 사람의 직업적인 소설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p257
 나는 올겨울 세계의 어딘가에서 또 한 번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도 또 어딘가에서 트라이애슬론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계절이 순환하고 해가 또 바뀌어간다. 나는 또 한 살을 먹고 아마도 또 하나의 소설을 써가게 될 것이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 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2018년 8월 31일 금요일

파워풀 _ 패티 맥코드



p12
이 책은 넷플릭스의 성장 과정을 추억하며 쓴게 아니다. 사업 환경이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는 오늘날,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문화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안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일 뿐이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까지, 그리고 단위가 크든 작든 모든 직급의 리더를 대상으로 쓴 책이다. 모든 리더는 새로운 시장 수요를 예상하고, 놀라운 기회를 포착하며, 새로운 기술을 물고 늘어지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쟁자가 더 빨리 혁신할 것이다.


p13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잘하기만 했을까? 알다시피, 어떤 기업도 그럴 순 없다. 우리는 수차례 발을 헛디뎠으며 그중 일부는 아마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도전 과제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갈 ‘아하!’의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점진적으로 적응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 실수하기 -> 처음부터 다시 하기 -> 좋은 결과 내기’가 그것이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넷플릭스는 적응력을 높이고 최고의 성과를 도출하는 독특한 문화를 창조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꾸준히, 끈기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회사가 원하는 핵심 행동 양식을 직원들에게 심어주고, 그런 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자(사실상 직원들에게 그런 행동을 실천하도록 요구했다) 놀랍게도 적극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팀이 됐다. 그 팀들이 오늘날의 넷플릭스를 탄생시킨 최고의 드라이버다.

>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 실수하기 -> 처음부터 다시 하기 -> 좋은 결과 내기’에 익숙해지고, 꾸준히 끈기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내디뎌가자.


p16
조직의 모든 사람, 모든 팀이 계획이 언제든 백지화되고 모든 것이 변화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됐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변화가 대단히 좋다고 여기게 됐다.


p72
사업가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정중하고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잔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속을 드러내고 직원들이 들어야 할 말을 해야만 그들이 당신을 믿고 이해할 수 있다.


p76
넷플릭스 문화를 이루는 하나의 축은 만약 일하는 방식에서 직원들이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사자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터놓고 얘기하길 바란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도 등 뒤에서 비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최고인재책임자였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자주 내게 어떤 직원 또는 어떤 부서의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그때마다 난 이렇게 대꾸했다. “그에게 직접 말해봤어요?”


p92
리더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둘 뿐 아니라 틀렸음을 인정하는 모습, 더욱이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은 직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더 소리 내 말하세요!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제시하세요!”


p97
직원들에게 익명이 허용될 때 더 진실해질 것이란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 진실한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진실하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피드백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들이 하는 일이나 조직에서의 위치 등 어떤 맥락에서 지적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익명의 조사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숨길 수 있을 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는 점이다.


p112
테드는 팀의 콘텐츠 창조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당히 많은 직관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팀원들이 데이터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똑똑해야 하는 동시에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일 것을 기대합니다.”


p124
당신도 이 같은 훌륭한 대화의 장을 만들 수 있다. 올바르게 대화를 설정하고, 단순히 이기기 위해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고객과 회사를 위한 최선의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데 시간을 조금만 들인다면 말이다. 이를 위해선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룹이 무엇을 결정할지와 대화의 이유를 명확히 해야 한다. 토론이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누군가가 고집스럽게 버틴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면서 끼어들 수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무엇이죠?” 또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p140
내 경험상 비즈니스 리더들이 정기적으로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는 ‘지금 있는 팀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팀이 어떤 팀인가’ 하는 것이다.


p144
기본적인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우리는 더 많이 일할 것이고, 더 놀라운 성과를 낼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 그 출발점을 현재의 팀으로 상정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당신이 데리고 있는 팀으로 시작하면, 더 많이 일할 수는 있겠지만 놀라운 성과를 내진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 미전에서 출발해서 이상적인 팀을 구축해라. 당신이 해결하길 원하는 문제를 찾아내라.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간을 정해라. 그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정보와 자원을 제공해라. 이를 위해 스스로에게 물어라. 준비가 되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가?


p162
넷플릭스는 인재관리에 대해 세 가지 기본 철학을 만들었다. 첫째, 훌륭한 사람을 채용하고 누구를 내보낼지를 결정하는 것은 관리자의 몫이다. 둘째, 모든 직무에 그저 적당한 사람이 아닌 매우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려고 노력한다. 셋째, 아무리 훌륭한 직원일지라도 그의 기술이 회사에 더는 필요치 않다면 기꺼이 작별 인사를 한다.

> 종종, 이건 이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니까 이렇게 할 수 있지 혹은 이정도 매출이 나니까(돈이 있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거지 하면서 꼭 지켜야 했던 기준들을 포기한 적이 많았다. 실제로 겪었던 것들로 예를 들어 본다면 모든 직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앉혀야 한다는 것, 그저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접합한 사람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등등. 이제 시작하는 팀이라고 해서 규모가 작은 회사라고 해도 절대 포기하면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제 시작하는 규모가 작은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되, 그 자체가 핑계가 되어선 안된다. 초기부터 잘하지 못하면 어느정도 규모가 커져도 잘 안될 문제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p219 
사회자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너무나 유명한 선수들이 성공하도록 코치했습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 그들에게 어떤 피드백을 줬나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한 시즌에 80회의 경기를 합니다. 열 번의 경기마다 나는 모든 선수와 개별적으로 만나요. 선수마다의 모든 통계를 가지고요. 다른 코치나 팀원들에게도 선수에 대한 피드백을 듣습니다. 선수 스스로도 자기평가서를 가져옵니다. 그런 뒤 우리는 다음 열 번의 경기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합니다.”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518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 광주에서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날에 거대한 국가로부터 힘 없이 짓밟힌 개인과, 그 개인들이 살아온 그날 이후의 삶에 대해 차분히 서술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수업시간에 혹은 영화에서 잠깐씩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한 것이 전부였을 때까지는 1980년 5월 19일과 그 이후를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518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주 들어 익숙해진 이름의 역사속 수 많은 사건들을 전혀 모르고 있구나 생각했다.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나.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을 읽고

 학교와 사회의 획일화된 교육 후에 인간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부작용을 겪게 된다. 학창시절에 꽤나 비판적인 사고를 했었다고 스스로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돌이켜보니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사고는 종종 비판적일 수 있었으나, 그 사고에 의해 비롯된 어떠한 실천과 행동도 존재하지 않았다. 용기 없이 정해져 있는 시스템에 누구보다도 착실히 적응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 반대편에서 퇴화해가고 있는 개성을 지켜내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제대로 지속해보지 못했다. 20살 이전까지의 나의 삶에는 ‘자유’라는 주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틈조차 없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의아할 만큼 맹목적이었고 순종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청소년들 대부분이 그렇기에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버린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자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남성의 경우 2년여의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나면 심각하게 자유를 침해받거나 박탈 당하는 일은 없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의해 박해 당하거나(종교가 법적인 혹은 사회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맹목적인 노동이 부당하게 강요되는 등의 일들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작게 봤을 때 종종 퇴보하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역사는 개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합리적으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개개인이 누리고 있는 정도의 ‘자유’를 기반으로 딛고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자유의 방향과 목적지는 어디일까. 짧은 생의 경험에서 비롯하는 고민과 통찰은 미천할 수밖에 없지만, 들떠있는 얘기를 떠들기보다는 피부로 느낀 것에 대해 써보려 한다. 

 쳇바퀴를 도는 듯한 학창시절을 벗어나서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나.” 원하는 삶의 의미 범위가 처음에는 직업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점차 말 그대로의 삶 전반으로 확장돼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무엇인가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께서 나에게 기대하는 일들과 달라지기 시작하면서였다. 아버지의 질문은 ‘네가 가장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돈이냐, 명예냐 아니면 다른 무엇이냐.’였다. 돈과 명예 같은 것들도 있으면 좋겠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체념하듯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해봐’라고 하셨지만, 전혀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느껴졌다.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경제적인 지원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좋다는 이유로, 타인들이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거나 혹은 심지어 올바르다는 이유로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강제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들은 그에게 충고하거나, 그와 함께 따져보거나, 그를 설득하거나, 나아가 그에게 간청하기에는 좋은 이유들이지만, 그를 강제하거나 혹은 그가 달리 행동할 경우 그에게 해를 가하기에는 좋은 이유들이 아니다.’라는 자명한 사실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주변의 걱정 어린 강요를 무릅쓰고 획일화되고 보편화되어 있는 대열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길을 가는 중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회의감이 이따끔씩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학교 교육에서 정해져 있는 커리큘럼을 공부하고 있을 때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때보다 훨씬 자유로우며 압도적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렇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보편적인 방향을 자신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끊임없이 강요받곤 한다. 다양한 개성들이, 그리고 그 다양한 개성들이 나아가는 방향이 이전 선례들 혹은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불안하게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시대의 ‘자유’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로 점차 진보하길 바라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개개인의 개성의 힘과 그 개성에 대한 자유의 중요함을 역설하는 책 속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한 민족은 일정한 시기 동안 진보한 다음 멈추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 멈추는가? 그것은 그 민족이 더 이상 개성을 소유하지 않을 때이다.’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사월의 미, 칠월의 솔 _ 김연수 소설

 ... 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따라 환한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일과 같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쓰는 소설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건 그날 저녁, 여행에 지친 우리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생각했던, 지평선을 가득 메운 그 반짝임 같은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머나먼 지평선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들이 라고,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서, 혹은 야즈드의 불빛이 아니라고 해도. _'작가의 말'에서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하자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전형적인 글쓰기 기법을 나열해 놓은 책들과는 달리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논리적 글쓰기를 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반드시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논증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면 꼭 지켜야 하는 규칙 세가지를 제시한다. 평소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고 역설한다. 그 세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이 세가지 규칙을 잘 따르기만 해도 어느 정도 높은 글을 쓸 수 있다." 

 이 단순해 보이는 규칙을 읽었을 때 단순한 깨달음 이상의 충격과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평소에 간과하고 놓쳐버리며 왔던 것을 뼈아프게 느끼게 해주었다. 평소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할 때 발생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이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했다. 단순히 취향을 말하는 것과 주장을 하는 것을 뚜렷한 구분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히 취향을 말하는 것이어서 서로의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넘어갔어야 했을 상황에서도 그러지 못하여 소모적인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의 발단은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단순 취향을 말할 때 단순히 그것이 취향을 말하는 것이라고 구별하지 못하여 취향을 주장처럼 말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러한 규칙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다면 얼마든지 순간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적 상황을 심화시키고 마침내는 돌아오지 못할 만큼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흘러 가게 하는 것은 애초에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하는 것에 대한 인식자체가 없이 취향 고백에 어설프고 말도 안되는 논증을 달며 논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논쟁이나 글의 결말은 결국 처음에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난잡한 것이 되어 흩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취향 고백과 주장을 말하거나 글을 쓰는데에 있어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면, 뒤에 이어진 규칙 또한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루어 질 것이다. 의도하는 주장을 확실히하고, 주장에 대한 확실한 논증을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하여 처음의 의도를 흐리지 않는다. 이런 원칙을 철저히 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쓴다면 더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현명한 투자가_벤저민 그레이엄

만약 공중에 성을 쌓는다면, 그것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중에 짓는 것이다. 이제 그것들의 아래에 기초를 쌓아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