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4일 목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5. 학교는 거들 뿐 (2015년 9월)


- 5. 학교는 거들 뿐 (2015년 9월)

학교는 거들 뿐...

 2015년, 학교에 입학한지 2년 하고 반이 지났다. 2학기가 개강하던 날, 수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에 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윤재(이윤재)형과 인중(정인중)이를 만났다. 대화의 주제는 '이번 학기에는 조금 더 제대로 딴짓을 해볼 건데, 뭘 할까'였다. 개강 첫날, 새 전공책에 적어둔 이름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작당모의라니. 참 안될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내 길은 내가 가는 것이다. 학교는 거들 뿐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 일상에서 푸시 알람으로 질문을 던지고 간단하게 답을 하면 질문과 답이 자동으로 가공되어 하루의 일기가 되는 앱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프로젝트의 가칭은 ‘Memorandum(비망록)'이었다. 처음에는 ‘오늘 기분이 어때?’, ‘점심은 뭐 먹었어?’, ‘날씨가 어때?’ 와 같이 간단하고 공통적인 질문을 하고 사용자의 답을 조합하여 투박한 문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질문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사용자의 대답과 매끄럽게 합쳐서 한 편의 일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틀 만에 프로젝트의 아이디어와 기획이 전면 수정돼야 했다. 인중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인중이는 학교 앱 개발 소모임 ‘님부스’에서 만난 한 학년 후배 동생인데, 프로그래밍에 정말 뛰어났다. 자동으로 개인화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과 대답을 하나의 글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 당시 나도 이 친구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프로젝트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담당할 사람이 빠지게 되었으니 더 이상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자동화를 시키지 못한다면 모든 질문을 직접 만들어야했다. 그런 획일적인 질문에 사용자들이 대답하는 방식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대생 남자 둘이서 스토커처럼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더 이상 우리도 굳이 거기에 매달려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인중이가 같이 못하게 된 것은 아쉽고 안타까웠으나,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것이고 프로젝트를 다시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윤재형과 나 둘이서 다시 머리를 맞댔다. 완성할 수 있으면서 사람들이 사용할 가치가 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Memorandum’에서 대부분을 걷어내고 우리가 좋다고 느낀 지점이 어디인가를 다시 되짚어보았다. 일기가 아닌 글 전체로 범위를 넓히고, 사용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대신 글쓰기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글감을 제공하기로 했다. 살펴보니 의외로 스마트폰에서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딱히 없어 보였다. 글쓰기에 익숙치 않거나 지속적으로 글쓰기가 어렵지만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 혹은 더 이상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는 내 글을 올리기가 껄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나 같은 사람이 전국에 최소한 1,000명은 있지 않을까. 처음 제대로 앱을 내놓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목표라고 생각했다.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획일화된 교육의 부작용

 획일화된 교육에 의해 교육된 후에 인간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부작용들을 겪게 됩니다. 학창시절에 꽤나 비판적인 사고를 했었다고 스스로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돌이켜보니 전혀 그렇지 못했던 같습니다. 또한 비판적인 사고에 의해 비롯된 어떠한 실천과 행동도 존재하지 않았고요. 어렴풋이 부자연스러운 과정과 방법으로 교육받고 있다는 것을 속으로 생각해보거나, 기껏해야 한가로울 번씩 투털거려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용기 없이 정해져 있는 시스템에 누구보다도 착실히 적응하려고 애를 썼지만, 반대편에서 퇴화해가고 있는 개성을 지켜내기 위한 어떠한 제대로 시도도 지속적으로 해보지 했습니다. 

 이제야 이따금씩 인지하게 되는 스스로의 한계는 시절의 안일함에 대한 대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중 하나는 획일화되고 보편화되어 있는 대열에서 잠깐 떨어져 나와 새로운 길을 필요 이상의 불안함을 스스로 느끼고, 주변 사람들에게 느끼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학교 교육 안에서 정해져 있는 커리큘럼을 공부하고 있을 때에는 거의 느끼지 했던 불안함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감히 스스로 판단하건대 그때보다 훨씬 자유로우며 압도적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러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보편적인 방향을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으로부터 끊임없이 강요받곤 합니다. 다양한 개성들이, 그리고 다양한 개성들이 나아가는 방향이 이전 선례들 혹은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는 때문에 불안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4.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 (기숙사에서 하와이까지)


- 4.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 (기숙사에서 하와이까지)

 일반인에게 무료로 프로그래밍을 알려주는 온라인 사이트 '생활코딩'을 운영하고 있는 egoing 님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를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아무리 오래 프로그래밍을 한 사람도 프로그래밍의 모든 것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전문가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휴학을 한 1학기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앱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기까지 필요한 것들 중에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또 무엇이 필요한지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었다. 휴학을 하니 학기를 진행할 때보다 시간이 몇 배로 빨리 가는 듯했다. 학과 수업과 동아리 활동 등 분산되어 있던 하루를 하고 싶은 일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휴학을 하고 얼마 뒤, 같이 룸메이트로 방을 쓰던 윤재형도 휴학을 했다. 깊게 들어가 보면 본인만 아는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보아선 비슷한 이유에서 휴학을 결정했던 것 같다. 주로 방에서 치킨을 먹다가 혹은 각자의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전에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상한 말들을 하다가 낄낄대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간간이 의미 있는 대화도 쌓여 갔다. '아직 실력은 모자라지만 우리가 조금 더 성장하면 이런 것을 해보자.' 대략 이런 식으로 대화가 시작됐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시작을 하면 마치 탁구 공이 오가듯 긴 대화가 이어졌다. 평소에 사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것이 다르지만 이럴 때는 정말 죽이 잘 맞았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앱으로 출시하는 초기 전략에서부터 글로벌 시장에까지 진출한 후 수억 명의 유저를 보유하는 모습까지 머릿속에서 상상을 뻗어 나갔다. 어떤 날은 저녁 무렵 치킨 먹을 때부터 시작하여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 동이 트고 닭이 우는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산 골짜기에 있는 학교에서 밤을 지새운 새벽에는 닭이 우는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언제나 결말은  우리가 하와이 해변에서 성공을 자축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대화의 여정을 '하와이에 간다'라고 불렀고, 기숙사 1603호 1번 방에서 숱하게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한없이 불안하고 막막할 때에는 망하더라도 같이 망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정말이다. 이때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많은 것의 시작이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와이는 아직 못 가본 관계로 비슷한 마카오 사진이라도..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1학기와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를 맞았다. 주전공은 컴퓨터공학 부전공은 산업디자인으로 새롭게 전공을 정했다. (학교 정책상 부전공이 필수다.) 공교롭게도 윤재형의 주전공은 공학디자인 부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다. 크로스로 전공이 겹치는 탓에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들었다. 이따금씩 서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지만 우리의 조합은 디자인과 프로젝트 수업에서 빛을 발했다. 디자인과 수업 중에도 Interactive design 혹은 Physical computing 같이 코딩을 활용할 수 있는 수업을 골라서 들었다. 세 학기에 걸쳐 '100원을 내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할 수 있는 로봇', '불이 들어오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계단', '스마트폰의 라이트와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탁상 스탠드', '각 앱 별 하루 사용시간을 측정한 데이터를 모래시계(구슬 활용)로 피지컬 하게 보여주는 기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서 일하기 전에 본인의 욕구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완성시켜보는 경험은 꼭 필요하다. 기계적으로 개발 혹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부품과 자신만의 영혼이 있는 제작자의 차이는 거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렇게 마음껏 뛰어놀듯이 진행해본 몇 번의 경험이 두고두고 큰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같이 앱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동료들을 갈망하던 내게 때마침 빛과 소금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학교에서 '님부스'라는 앱 개발 소모임을 하고 있던 친구들이다. 구성원은 총 열몇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축은 컴퓨터공학과를 전공 혹은 부전공 하던 동기, 후배 6명 정도였다. 열정 있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앱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혼자서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활기가 있었다. 주로 빈 교실이나 휴게실에서 만났는데, 자체적으로 간단한 앱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굵직굵직한 학교 기관들에 필요한 앱을 만들어주고 작게나마 돈을 벌기도 했다. 이쯤 되면 학교를 다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하는 궁금증이 생길 법한데, 철저히 선택과 집중을 했다. 학점은 보통 정도만 유지하면 만족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닥치는 대로 마음껏 해보면서 도중에 좌절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완성시켜 매듭을 지었다.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이 쌓이면서 조금 더 욕심이 났다. 수업 프로젝트로서 끝나거나, 개인적인 만족 혹은 작은 돈벌이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닌 누군가가 진짜로 사용하는 앱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때까지는 그저 내 생각과 의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닿는 것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라이트와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탁상 스탠드' 프로젝트의 사진들)



2017년 8월 18일 금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3. 첫 번째 전환점

1. 앱스토어 세대의 시작
2. 학교 창업팀

- 3. 첫 번째 전환점



 스무 살, 스물한 살 이맘때의 장점들 중 하나는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딱히 쌓아둔 것이 많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일에 뛰어들거나 기존에 정해둔 방향을 전환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방어적인 결정들을 하는 듯하지만 말이다. )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것인지 내가 다닌 학교는 전교생이 '기초과정부'라는 공통과정 1년을 거쳐 2학년 때 세부 전공을 정하도록 했다.

 원래는 2학년이 되면 기계과를 갈 계획이었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항공 우주 관련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공부한 후 한국에도 Space X 와 같은 회사를 창업하겠다는 나름의 원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실제로 와서 경험해보니 우주를 개척하는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너무도 막막해 보이는데 모바일 앱으로는 당장이라도 무엇인가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고등학교 때 당시 앱 개발의 꿈을 잠시 마음에 묻어둔 것처럼 우주 산업에 대한 꿈을 잠시 마음에 묻어두기로 했다.

 1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면서 시작한 안드로이드 앱 개발 공부는 여전히 밑바닥을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2학년 1학기가 되어 예정대로 기계과에 진학하여 기계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남는 시간에 안드로이드 앱 개발 공부를 지속했다. 하지만 온통 앱 개발에 마음을 뺏겨 기계과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대로는 둘 다 제대로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1학기를 휴학하고 개발 공부에 집중한 후에 2학기에 컴퓨터 공학과로 본 전공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개 아니지만 그 당시로서는 꽤 큰 결심이었다. 부모님의 걱정 어린 반대와 혼자서 주변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불안감을 넘어설 어떠한 논리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인 직감에 따라 결정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두고두고 후회할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학기를 시작한 지 두 주 만에 휴학한 후로부터 다시 2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의 약 6개월은 내 짧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처량하고 비참했던 시간이다. 일단 저질러 놓았으니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마음만 앞서서 조급해졌고, 반대로 성장은 더디게만 느껴졌다. 돌이켜봤을 때 내게 없어선 안될 시간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안내 음성도 없이 걸어가고 있는 듯했다.

 혼자 책과 구글을 뒤져가며 개발을 하면서 지치기도 했고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는다고 느꼈다. 누군가 개발을 잘하는 사람에게 배우면서 더 빨리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기관, 기업에서 실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주로 서울이나 부산에서 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울이 낫겠지 싶어 서울에서 진행 중이던 삼 주 짜리 안드로이드 앱 개발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구의 좁은 방에 얹혀서 지내기로 하고 무작정 올라왔다.

 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한 번 듣고 나면 실력이 폭풍 성장해서 원하는 앱을 다 만들어 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실에서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삼 주 짜리 교육 프로그램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현장의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비슷한 또래와 수업을 듣는 것에 익숙했는데 그곳의 연령층은 평균적으로 삼십 대를 웃돌았다. 그 교육 프로그램의 목적 자체도 본인의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었던 것 같다. 조급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프로그램을 이수했지만 수업을 듣는 내내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친구의 자취방과 교육장을 매일 지하철로 오가며 '엄청난 성공 그런 건 이제 모르겠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만드는데 온통 시간을 쏟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만이라도 빨리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절대 지금의 날들을 잊지 않고 감사히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사람은 제각기 절실하지만 세상은 일관적으로 완고하다. "안돼 돌아가"라고 말하는 서울을 뒤로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되 하루하루 온전히 개발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가고자 애썼다. 여러 방황 끝에 알게 된 것은 해야만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것도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주변에 누군가가 개발을 시작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조언을 구한다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좋으니 스스로에게 적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꾸준히 개발에 집중해보세요. 책을 보든 구글링을 하든 유튜브 영상을 보든 다 좋습니다. 돌이켜 봤을 때 방법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4.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 (기숙사에서 하와이까지)
5. 학교는 거들 뿐
6. 출시를 향해
7. 출시 후 일주일
8. 5분의 대화
9. 겨울방학

2017년 8월 12일 토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2. 학교 창업팀 (2013년 9~12월)


- 2. 학교 창업팀 (2013년 9~12월)

학교 창업팀 Project M


 창업팀은 내가 들어가기 6개월 전에 만들어졌고 여러 학과의 선배 다섯 명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다섯 명의 충원으로 총 열 명의 팀이 됐다. 그때가 2013년의 늦여름, 1학년 2학기였다.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창업팀 일을 했다. 그전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동아리 활동을 했던 시간을 온전히 창업팀에 쏟았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는 창업 경진 대회가 정말 많았다. 도서관의 스터디룸, 빈 강의실을 전전하며 열띤 토론을 하고 기획서를 작성해서 다양한 창업 아이템 경진 대회에 지원했다.

 다수의 대회를 경험하며 대회 수상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어서 몇몇 대회에서 연달아 입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될 것만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상장과 상금이 팀의 성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가진 팀들을 발굴하고, 상금 혹은 지원금을 줘서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대회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금과 지원금을 받은 뒤 그것으로 실제 제품을 제작하는 것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다음 대회에 지원해서 상금을 쌓아가는 것에 더 매달렸다.

 꽤 큰 규모의 시상식에 참가하러 팀 전체가 코엑스에 간 일이 있다. 분명 기쁜 일로 왔지만 와서는 안될 곳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시 학교가 있는 울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후로부터 아이디어를 토론하고 문서화하며 그렇게 완성된 기획서로 대회에 지원하는 등의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탁상공론. 수십 개의 앱 서비스 아이디어로 수십 개의 대회를 나가면서도 끝까지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그때까지 받았던 상금, 지원금을 끌어모아 외주를 몇 번 맡겨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데, 외주 업체가 그것을 알고 만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면서 한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한 학기 동안 창업팀 활동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 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최소한 뭐라도 시작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응당 필요한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정직하게 들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작은 규모일지라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고 앱 개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로 되는 일은 없다.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1. 앱스토어 세대의 시작 (2013년 9월)



- 1. 앱스토어 세대의 시작 (2013년 9월)

"자 여러분 앱스토어 시대입니다!"


 X 세대, 88만 원 세대, 베이비붐 세대 등 각 세대를 정의하는 다양한 말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라고 정의한다. (편의상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를 모두 포함하여 앱스토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앱스토어가 끼친 영향은 한 세대를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폰 혹은 스마트폰 세대가 아닌 앱스토어 세대다. 아이폰이 이끌어낸 혁신의 본질은 오히려 앱스토어에 있는 게 아닐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돌고 도는 얘기일 수 있지만 앱스토어의 의미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겪어온 앱스토어 세대에 대해 써보려 한다.

 한참 시간을 거슬러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2007년에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고, 그로부터 2년 뒤 2009년에 한국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모토롤라의 폴더폰을 쓰고 있었다. 내 핸드폰은 기껏해야 전화와 문자 그리고 알람을 설정해두는 것이 전부인데 주변 어른들의 아이폰은 촛불도 켜고 총도 쏠 수 있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아 이건 진짜 새로운 거구나. 농구에 죽고 살던 중학생 꼬맹이도 느낄 수 있었다. 앱스토어에는 새로 설치할 수 있는 앱들이 보물처럼 쌓여 있으니 아이폰은 새로 만날 때마다 진화해 있었다.

 그렇게 1년간 짝사랑을 키워가던 중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2010년에 부모님을 겨우 설득하여 아이폰 3GS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삼성, HTC 등 여러 회사에서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아이폰에 비해 한참이나 뒤처져 있었다. 아이폰을 사용한다는 건 아이폰 그 자체에 대한 신선함과 더불어 아이폰이 보여주었던 월등함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애플빠, 앱등이로 불리는 높은 충성도의 지지층 혹은 광신도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보면 별 쓸모도 그렇다고 재미도 없이 단순한 앱들이 마켓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고, 앵그리 버드를 비롯한 다양한 성공 신화가 탄생했다.

 그중 뉴스와 신문에도 소개되었던 고등학생이 개발한 버스 정보 앱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앱을 만드는 것은 큰 회사나 외국인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사실 더 정확히는 '어딘가 크고 돈 많은 데가 만들겠지' 이런 생각에 더 가까웠거나 그 정도의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이라니. 같은 고등학생이라는 것 하나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도 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심찬 호기심의 씨앗을 심어주었으니 이 지점이 앱스토어 세대의 발상지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곧장 인터파크 웹사이트에 가서 인기 있어 보이는 아이폰 앱 개발 책 한 권과 objective C 책 한 권을 주문했다. 하지만 아이폰 앱을 개발하려면 애플의 맥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열정만 앞서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 입시 준비로 서서히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있는 마당에 무작정 매달릴 수도 없었다. 순수했던? 열정을 마음속에 잠시 묻어둔 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13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2013년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해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며 등장한 '창조경제' 정책과 맞물려 시대 트렌드였던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각종 창업 경진대회와 정부 지원 사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적게는 몇 백만 원단위에서 많게는 몇 천, 몇 억 단위의 상금 혹은 지원금으로 대학생들과 예비 창업자들을 유혹했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타고 학교에도 창업 활동을 집중해서 하는 팀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1학년 2학기가 시작되는 날 이른 밤이었다. 학생회관에 들렸다가 신입을 모집하고 있는 교내 창업팀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막연한 기대를 안고 창업팀에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앱을 만들어보려다가 실패했던 경험 때문인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만들면 정말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몇몇 앱들의 놀라운 성공을 멀리서 바라보며 부풀었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 10일 목요일

'씀 frees up time for writers to focus on more important thing'

 8월 7일 서울 삼성역 근처 호텔에서 진행된 Google for mobile I/O RECAP 2017 행사에 다녀왔다. 올해 미국에서 열린 Google I/O 행사를 서울에서 말 그대로 recap 해보는 행사인데, 다양한 세션이 A, B, C 구역으로 나뉘어서 30분 단위의 짧은 호흡으로 진행됐다.

 세션 하나하나가 모두 인상적이었다. 같이 간 윤재형과 '역시 구글!'이라는 말을 연발하며 감탄에 감탄을 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각 세션에서 소개된 요소들이 각자의 확고하고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 가지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많은 세션들 중 하나만 듣더라도 Google이 맹렬히 달려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가 선명하게 그려지며, 어느 순간 그 레이스를 열렬히 지지하는 팬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유튜브로 볼 때와는 다른 몰입감이 있었다. 내년에는 꼭 미국에서 열리는 I/O 본행사를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중 'Design Systems: Making Google Beautiful Around the world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한 구글 디자인 시스템의 활용)' 세션은 앞서 말한 경험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세션이었다.  'Material Design frees up time for designers and developers to focus on more important thing'은 이 세션을 통해서 알게 된 구글 Material Design의 비전이 담긴 문장이다.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비롯한 제품의 제작자들이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주겠다는 생각은 Material Design 요소만의 문장이 아니었다. 구글의 무궁무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이 제작자의 시간을 아껴서 서비스 혹은 제품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Android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외에도 모바일 앱을 제작하기 위한 종합 인프라를 제공하는 Firebase, 백엔드 서버 인프라를 책임지는 Google Cloud, 그리고 사용자의 사용성과 편리함 그리고 제작자들의 브랜드를 나타내는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Google Material Design 등등. 저 문장이 더 힘 있게 다가왔던 것은 실제 앱을 제작하여 운영 중인 제작자로서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말뿐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 느껴왔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부분에서 진심으로 제작자를 위해 고민하고 개선해온 부분들을 만나며 압도당하곤 한다. 무엇보다 저렇게 거대한 집단이 한 가지 정신으로 뭉쳐서 위대한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자연스럽게 우리 팀에 대해 그리고 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Material Design의 말을 빌려 씀의 비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씀이 시간을 아껴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팀과 씀의 각 요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확고하고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한 가지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씀 frees up time for writers to focus on more important 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