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0일 일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4.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 (기숙사에서 하와이까지)


- 4.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 (기숙사에서 하와이까지)

 일반인에게 무료로 프로그래밍을 알려주는 온라인 사이트 '생활코딩'을 운영하고 있는 egoing 님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를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아무리 오래 프로그래밍을 한 사람도 프로그래밍의 모든 것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전문가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휴학을 한 1학기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앱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기까지 필요한 것들 중에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또 무엇이 필요한지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었다. 휴학을 하니 학기를 진행할 때보다 시간이 몇 배로 빨리 가는 듯했다. 학과 수업과 동아리 활동 등 분산되어 있던 하루를 하고 싶은 일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휴학을 하고 얼마 뒤, 같이 룸메이트로 방을 쓰던 윤재형도 휴학을 했다. 깊게 들어가 보면 본인만 아는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보아선 비슷한 이유에서 휴학을 결정했던 것 같다. 주로 방에서 치킨을 먹다가 혹은 각자의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전에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상한 말들을 하다가 낄낄대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간간이 의미 있는 대화도 쌓여 갔다. '아직 실력은 모자라지만 우리가 조금 더 성장하면 이런 것을 해보자.' 대략 이런 식으로 대화가 시작됐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시작을 하면 마치 탁구 공이 오가듯 긴 대화가 이어졌다. 평소에 사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것이 다르지만 이럴 때는 정말 죽이 잘 맞았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앱으로 출시하는 초기 전략에서부터 글로벌 시장에까지 진출한 후 수억 명의 유저를 보유하는 모습까지 머릿속에서 상상을 뻗어 나갔다. 어떤 날은 저녁 무렵 치킨 먹을 때부터 시작하여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 동이 트고 닭이 우는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산 골짜기에 있는 학교에서 밤을 지새운 새벽에는 닭이 우는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언제나 결말은  우리가 하와이 해변에서 성공을 자축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대화의 여정을 '하와이에 간다'라고 불렀고, 기숙사 1603호 1번 방에서 숱하게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한없이 불안하고 막막할 때에는 망하더라도 같이 망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정말이다. 이때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많은 것의 시작이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와이는 아직 못 가본 관계로 비슷한 마카오 사진이라도..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1학기와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를 맞았다. 주전공은 컴퓨터공학 부전공은 산업디자인으로 새롭게 전공을 정했다. (학교 정책상 부전공이 필수다.) 공교롭게도 윤재형의 주전공은 공학디자인 부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다. 크로스로 전공이 겹치는 탓에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들었다. 이따금씩 서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지만 우리의 조합은 디자인과 프로젝트 수업에서 빛을 발했다. 디자인과 수업 중에도 Interactive design 혹은 Physical computing 같이 코딩을 활용할 수 있는 수업을 골라서 들었다. 세 학기에 걸쳐 '100원을 내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할 수 있는 로봇', '불이 들어오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계단', '스마트폰의 라이트와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탁상 스탠드', '각 앱 별 하루 사용시간을 측정한 데이터를 모래시계(구슬 활용)로 피지컬 하게 보여주는 기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서 일하기 전에 본인의 욕구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완성시켜보는 경험은 꼭 필요하다. 기계적으로 개발 혹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부품과 자신만의 영혼이 있는 제작자의 차이는 거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렇게 마음껏 뛰어놀듯이 진행해본 몇 번의 경험이 두고두고 큰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같이 앱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동료들을 갈망하던 내게 때마침 빛과 소금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학교에서 '님부스'라는 앱 개발 소모임을 하고 있던 친구들이다. 구성원은 총 열몇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축은 컴퓨터공학과를 전공 혹은 부전공 하던 동기, 후배 6명 정도였다. 열정 있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앱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혼자서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활기가 있었다. 주로 빈 교실이나 휴게실에서 만났는데, 자체적으로 간단한 앱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굵직굵직한 학교 기관들에 필요한 앱을 만들어주고 작게나마 돈을 벌기도 했다. 이쯤 되면 학교를 다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하는 궁금증이 생길 법한데, 철저히 선택과 집중을 했다. 학점은 보통 정도만 유지하면 만족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닥치는 대로 마음껏 해보면서 도중에 좌절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완성시켜 매듭을 지었다.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이 쌓이면서 조금 더 욕심이 났다. 수업 프로젝트로서 끝나거나, 개인적인 만족 혹은 작은 돈벌이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닌 누군가가 진짜로 사용하는 앱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때까지는 그저 내 생각과 의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닿는 것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라이트와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탁상 스탠드' 프로젝트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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