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학교는 거들 뿐 (2015년 9월)
학교는 거들 뿐... |
2015년, 학교에 입학한지 2년 하고 반이 지났다. 2학기가 개강하던 날, 수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에 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윤재(이윤재)형과 인중(정인중)이를 만났다. 대화의 주제는 '이번 학기에는 조금 더 제대로 딴짓을 해볼 건데, 뭘 할까'였다. 개강 첫날, 새 전공책에 적어둔 이름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작당모의라니. 참 안될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내 길은 내가 가는 것이다. 학교는 거들 뿐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 일상에서 푸시 알람으로 질문을 던지고 간단하게 답을 하면 질문과 답이 자동으로 가공되어 하루의 일기가 되는 앱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프로젝트의 가칭은 ‘Memorandum(비망록)'이었다. 처음에는 ‘오늘 기분이 어때?’, ‘점심은 뭐 먹었어?’, ‘날씨가 어때?’ 와 같이 간단하고 공통적인 질문을 하고 사용자의 답을 조합하여 투박한 문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질문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사용자의 대답과 매끄럽게 합쳐서 한 편의 일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틀 만에 프로젝트의 아이디어와 기획이 전면 수정돼야 했다. 인중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인중이는 학교 앱 개발 소모임 ‘님부스’에서 만난 한 학년 후배 동생인데, 프로그래밍에 정말 뛰어났다. 자동으로 개인화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과 대답을 하나의 글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 당시 나도 이 친구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프로젝트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담당할 사람이 빠지게 되었으니 더 이상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자동화를 시키지 못한다면 모든 질문을 직접 만들어야했다. 그런 획일적인 질문에 사용자들이 대답하는 방식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대생 남자 둘이서 스토커처럼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더 이상 우리도 굳이 거기에 매달려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인중이가 같이 못하게 된 것은 아쉽고 안타까웠으나,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것이고 프로젝트를 다시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윤재형과 나 둘이서 다시 머리를 맞댔다. 완성할 수 있으면서 사람들이 사용할 가치가 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Memorandum’에서 대부분을 걷어내고 우리가 좋다고 느낀 지점이 어디인가를 다시 되짚어보았다. 일기가 아닌 글 전체로 범위를 넓히고, 사용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대신 글쓰기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글감을 제공하기로 했다. 살펴보니 의외로 스마트폰에서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딱히 없어 보였다. 글쓰기에 익숙치 않거나 지속적으로 글쓰기가 어렵지만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 혹은 더 이상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는 내 글을 올리기가 껄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나 같은 사람이 전국에 최소한 1,000명은 있지 않을까. 처음 제대로 앱을 내놓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목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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