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기차를 타고 고향인 김천에 가는 중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꼬마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애타가 찾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기차에는 그 무엇인가가 없다고 설명하며 애써 아이를 달래는 중이었다. 무엇을 저리 애타가 찾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중에 문득 나의 어린 시절 중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내가 일곱 살,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때의 어렴풋한 기억이다. 연년생인 형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었고, 유치원을 마치고 나면 엄마가 차를 타고 데리러 오셨다. 형이 한 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부터는 엄마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때의 나도 기차에서 칭얼대고 있는 저 아이처럼 막연하게 무엇인가를 찾곤 했다. 유치원에서 먹은 쿠키가 너무 맛있었던 날이면 그 쿠키를 찾으러 가자고 했고, 가지고 놀았던 유치원의 교구나 장난감이 너무 재미있었던 날이면 그 장난감을 찾으러 가자고 했다.
그땐 미쳐 알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그 기억들이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들떠서 쫑알대며 무엇인가를 찾을 때마다 엄마는 그 말도 안 되는 설명과 엉터리 묘사를 찬찬히 그리고 진지하게 들어주고, 함께 그 무언가들을 찾으러 다녀주셨다. 쿠키를 찾는 날에는 온 동네 제과점을 다 돌아다녔고, 장난감을 찾는 날에는 동네의 마트와 장난감 가게들을 뒤지러 다녔었다. 그렇게 세네 군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는 제 풀어 지쳤고 그때쯤 엄마는 납득할만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거나 다음에 다시 찾아볼 것을 제안해주셨다.
분명 그때의 엄마도 나의 설명과 묘사로는 그 무엇인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것을 찾고 못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억누르거나 굴복시키려 하기보다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납득할 수 있도록 과정을 함께 해주었고 그것을 귀찮거나 낭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한 맥락의 기억하는 일들과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차곡차곡 쌓여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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